8도(道)

  조선의 지방 행정조직은 전국을 경기 ·충청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길(咸吉) ·평안(平安)의 8도(道)로 나누고, 그 밑에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두었다. 도에는 관찰사(觀察使)가 장관으로, 행정 ·군사 및 사법권을 행사하며, 수령을 지휘 ·감독하고, 민생을 순찰하는 감찰관의 기능도 있다. 경주 ·전주 ·개성 ·함흥 ·평양 ·의주 등 대도시의 책임자인 부윤(府尹), 여주(驪州) 등 20개 목의 목사(牧使), 군의 군수(郡守), 현의 현령(縣令)과 현감(縣監) 등을 수령이라 하였는데, 이들은 일반국민을 직접 다스리는 이른바 목민관(牧民官)이었으며, 그 주된 임무는 공세(貢稅) ·부역(賦役) 등을 중앙으로 조달하는 일이었다.

  군 ·현 밑에는 면 ·이를 두고 지방민을 면장(面長) ·이정(里正)으로 임명하여 수령의 통할하에 자치토록 하였다. 지방관은 행정 ·사법 ·군사 등의 광범한 권한을 위임받고 있었으나, 그들의 임기는 관찰사가 360일, 수령이 1,800일로 제한되어 있었고, 또 자기 출신지에는 임명될 수 없는 상피제(相避制)가 적용되었다. 이는 지방에 거주하는 양반들, 특히 자기의 동족과 결탁한 변란이나 작폐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고종 32년(1895) 5월 26일에는 칙령 제101호에 의하여 전국 8도제도를 폐지하였는데, 8도의 각 감영(監營) 및 안무영(按撫營)과 개성·강화·광주·춘천 등 각 유수부(留守府)를 폐지하였다. 이것을 대신하여 전국을 23부 337군으로 하면서 수도였던 한성부를 한성군(漢城郡)으로 격하하고 한성부는 전국 23부 중의 하나로서 한성군을 포함하여 양주군·광주군·적성군·포천군·영평군·가평군·연천군·고양군·파주군·교하군 등 11개 군을 관할하는 관부가 되었다. 따라서 종래의 한성부의 역할은 한성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성부를 제외한 그외 22부와 그 부속 군은 다음과 같다. 인천(:12군)·개성(:13군)·공주(:27군)·충주(:20군)·홍주(:22군)·대구(:23군)·안동(:16군)·진주(:21군)·동래(:10군)·전주(:20군)·나주(:16군)·남원(:15군)·제주(:3군)·해주(:16군)·춘천(:13군)·강릉(:9군)·함흥(:11군)·경성(:10군)·갑산(:1군)·평양(:27군)·의주(:13군)·강계(:6군) 등이다.
또,
지방 각 부·군의 관제로는 한성부에 관찰사 1인, 참사관(參事官) 1인, 주사(主事) 약간 인을 두었다. 한성부에는 특히 경무청(警務廳)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무관 이하 판임경찰관리(判任警察官吏)를 배치하지 않았다. 한성부 이외의 각 부에는 관찰사 1인, 참사관 1인, 주사 약간 인, 경무관 1인, 경무관보 1인, 총순(總巡) 2인 이하를 두었다. 이같은 지방관제개혁으로 모든 지방관의 계층제가 확립되어 직무상 중앙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었다. 또 지방의 병권과 재판권·경찰권 등을 각기 관할기관에서 분리 관장함으로써 지방행정체계가 정비되었다.

  그런데 이 지방제도는 실시한지 불과 1년 3개월 만인 고종 33년 (1896) 8월 4일 칙령 제35호로 완전히 폐지되고 칙령 제36호로 전국 23부 337군을 13도 7부 331군으로 개편하였다. 즉, 1895년 9월 5일에는 ‘각군경비배정(各郡經費配定)에 관한 건’이 반포됨으로써 각 군의 군수 이하 세무주사, 장교, 이방(吏房), 사령(使令)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방관료들의 급료를 명문화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무려 1만여 명의 관료층이 새로이 행정관료층에 편입되었다. 이는 종래 지방자치적 세습관리였던 향리층이 근대적 중앙집권국가의 관료층으로 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신설 23부제 아래서 현재 남양주시를 포함하고 있었던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당시 한성부는 서울인 한성과 오늘의 경기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 수도권 행정구역으로서 부청(府廳)소재지 한성을 비롯하여 양주·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의 11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처럼 23부제는 외견상으로는 획일적이고 간편하여 상당히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소지역주의에 입각한 과대분할로 실제 행정운영상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종래의 8도제를 무시한 인위적인 획정이었기 때문에 오랜 전통과 현실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 이에 따라 23부제 지방행정구역은 1년 2개월의 짧은 기간으로 폐지되고 1896년 8월 6일 13도제 개편이 실시되었다. 이 때의 13도제는 종래의 8도를 기반으로 경기·강원·황해도를 제외한 충청·전라·경상·평안·함경도를 남북으로 분할한 것이었다. 13도 밑의 하부행정구역으로 부·목·군을 두었는데 수도인 한성부만은 정부직할하에 두어 도와 격을 같게 하였다.

  한성부를 제외한 일반 부(府)는 광주·개성·강화·인천 등 경기도 관할하의 4부와 경상남도의 동래, 함경남도의 덕원, 함경북도의 경흥 등 모두 7개였다. 목은 제주 하나였으며 군은 23부제 발족 당시의 336개군에서 약간의 통폐합을 거쳐 331개군으로 확정되었다. 따라서 13도제 시행 당시 정부직할의 한성부를 제외한 전국 지방행정구역수는 모두 13도 7부 1목 331군이었다. 이 시기 양주는 경기도 소속이었다. 그런데 이들 부·목·군의 구별은 지역의 중요성과 특수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부·목·군은 다시 5등급으로 구분하여 이에 따라 인원·봉급·경비 등을 달리하였다. 이러한 구별은 23부제하에 있어서도 인구·토지 등의 기준에 따라 운용하여 오던 것이었다. 다만 이 때에는 그 등급 구분에서 5등급을 대폭 축소하여 86개군에서 단 2개군으로 줄인 대신 4등급을 확대하여 109개군에서 214개군으로 늘인 정도가 그 차이점이었고, 부와 목은 당연히 1등급으로 취급하였다. 경기도는 38개 구역으로 나누어 1등급에는 광주부·개성부·강화부·인천부가 속하였고, 2등급에는 수원군이 해당되었으며 3등급에는 양주군을 비롯해 여주군·장단군·통진군이 나머지 29개군은 4등급이었다.

  이때 관제개편에서 한성부에는 판윤(判尹), 도에는 관찰사, 부에는 부사(府使), 목에는 목사(牧使), 군에는 군수를 두었다. 판윤과 관찰사는 내부대신(內部大臣)의 지휘 감독을 받아 법률명령을 집행하고 행정사무를 총괄하되 각 부(部)의 관계사무는 이를 각 부 대신의 지휘 감독하에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지방행정은 내부 소관이 되었다. 부사와 목사, 군수는 관찰사의 지휘 감독하에 법률명령과 행정사무를 집행·장리(掌理)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다만 제주목사만은 대정(大靜)·정의(旌義) 두 군을 관할함에 관찰사와 동일한 권한을 갖도록 하는 예외를 두었다.

  이러한 1895년 23부제와 1896년 13도제의 두 차례에 걸친 대개편으로 종래 모든 관인들이 왕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지던 평면적인 행정조직체제로부터 계서제(階序制)에 의한 책임분담원칙에 입각한 이른바 피라미드형의 현대적 행정체제로의 전환을 보게 되었다. 특히 오늘날의 지방행정체계는 이 13도제에서부터 그 기반이 확립되었으므로 지방행정구역 발전사에서 점하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인터넷"http://www.nyj.go.kr/nmcg/1/1207003.htm"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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