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 칠기 (螺鈿 漆器)

  나전이란 자개를 무늬대로 잘라 목심(木心)이나 칠면(漆面)에 박아넣거나 붙이는 칠공예 기법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전감(嵌)·함방(陷蚌)·취라(吹螺) 또는 나전(螺塡)이라고도 하며, 한국에서는 원래 자개라고 하였다.

  나전에 사용하는 조개껍데기는 야광패(夜光貝)·전복껍데기가 주로 쓰이며 이 밖에도 담패(淡貝)·현패(貝:가막조개)·멕시코 포패(鮑貝) 등 진줏빛을 내는 조개를 사용한다. 조개껍데기를 숫돌 등에 갈아서 여러 두께로 만들어낸다. 이것을 100장씩 포개 놓은 것이 두께의 단위가 되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후패(厚貝)가 4치(12.1cm), 박패(薄貝)가 2푼 5리(7.3mm)짜리를 기준으로 삼고 각종 두께로 만들어진다.

  이것을 붙이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 감입법(嵌入法:나전의 문양대로 목심을 도려내고 거기에 끼우는 법)·첩부법(貼附法:문양을 아교나 풀로 붙이는 법)·살부법(撒附法:나전을 잘게 썰어 뿌려 붙이는 법)의 3가지 방법이 있으며, 다시 조개껍데기를 성형하는 방법과 작업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후패법(厚貝法)은 조개껍데기의 후판(厚板)을 끌이나 실톱으로 자른 다음 줄칼로 형태를 다듬는다. 이것을 목심이나 칠면에 붙이는 방법은 위에서 말한 감입법이나 첩부법을 사용한다. 붙이기 작업이 끝나면 닦아서 윤을 낸다.

  박패법(薄貝法)에는 얇은 자개를 자르는 데는 손칼이나 바늘 끝 등을 사용하는 '도려내기법'과, 무늬가 똑같은 끌을 만들어 찍어내는 '찍어내기법'이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낸 무늬를 첩부법으로 목심에 붙이고 마무리작업을 한다. 이 밖에 조개껍데기를 원형대로 붙여 놓고 그 위에 옻[漆]으로 무늬를 그려 이것이 마른 다음 희석한 염산을 발라 무늬 이외의 부분을 부식시키는 '부식법'도 있다.

  할패법(割貝法)은 자개조각에 인공적으로 균열을 만들어 둥근 기물 등에 붙이는 방법이다. 균열을 만드는 데는 후패의 경우 자개를 종이에 붙이고 망치로 쪼개거나 유발(乳鉢)로 부수고, 박패의 경우는 한지에 붙인 자개조각을 붓대 등에 감아서 금이 가게 하거나 미리 바늘 끝으로 자개에 선을 내어 감는다.

  시패법(蒔貝法)은 자개를 잘게 부수어 뿌려서 붙이는 방법으로 세편(細片)을 체에 쳐서 분류하는데, 그 중 잔것을 미진패(微塵貝)라 하며 소도구의 장식용 등에 쓰인다.

  치패법(置貝法)은 세모꼴·네모꼴·마름모꼴 등으로 자개조각을 잘게 잘라 칠면에 늘어놓는 방법이다.

  복채법(伏彩法)은 얇은 자개의 뒷면에 채색하거나 금박하는 방법으로 중국 명나라 때 성행하였다.

  모조법(毛彫法)은 자개에 머리털 같은 가는 선을 새기는 방법으로 꽃잎·나뭇잎·깃털 등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부조법(浮彫法)은 칼을 사용하여 자개에 무늬를 양각하는 방법으로 조패(彫貝)라고도 한다.

  한국의 나전은 삼국시대, 중국 당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믿어진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라 전하는 당나라 양식의 《보상화문평탈나전경감(寶相華文平脫螺鈿鏡鑑)》이 민간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위의 추측은 신빙성이 있다. 그후 중국은 송나라 때부터 나전기법이 쇠퇴하였으나, 한국은 고려 때 나전기법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도자기 공예와 더불어 고려의 대표적 공예가 되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에 관하여는 《고려사》나 《동국문헌비고》 등에 그 기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유물도 전해지고 있어 그러한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고려 문종 때 이미 고려에서 요(遼)나라에 나전칠기를 예물로 보낸 기사가 보이며, 1123년(인종 1)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경》에는 고려의 나전칠기에 대하여 “그 기법이 매우 세밀하여 귀히 여길 만하며, 나전이 장식된 말안장도 매우 정교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목칠나전(木漆螺鈿)의 정품(精品)들은 당시 관영 공예품 제작소였던 중상서(中尙署)에서 화업(畵業)·소목장(小木匠)·위장(韋匠)·칠장(漆匠)·마장(磨匠)·나전장(螺鈿匠) 등 칠공들에 의하여 양산된 사실이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 기록되어 있으며, 중상서는 목종(穆宗) 때 설치되어 고려 말기까지 존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후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 간행되면서 그 경책(經冊)을 넣어 두기 위한 나전경상(螺鈿經箱)을 만들기 위하여 1272년(원종 13)에는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이 설치되었고, 이때 만들어진 경상류가 지금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나전의 명품들이다.

  예를 들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흑칠나전포류수금문향상(黑漆螺鈿蒲柳水禽文香箱) 외 4점을 비롯하여 일본 도쿠가와[德川]미술관에 있는 합자(合子), 다이마사[當麻寺]에 있는 대모장염주함(玳瑁裝念珠函), 게이슌인[桂春院]에 있는 대모합자(玳瑁合子), 미국 보스턴 미술관의 경상(經箱), 영국 대영박물관의 경상, 독일 쾰른의 동양미술관에 있는 나전상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동양미술관에 있는 경상 등이며, 이들은 모두 흑칠나전(黑漆螺鈿)으로 국당초무늬[菊唐草文] 등의 장식을 한 명품들이다. 이러한 고려의 나전공예는 고려의 쇠퇴와 함께 13세기 후반부터 점차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해이해지면서, 성글고 거친 기법이 조선 전·중기의 나전으로 전승된다.

  조선시대의 나전칠기는 대체로 크게 3단계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즉, 조선 전·중기인 15~16세기의 나전의장(螺鈿意匠)은 연당초무늬[蓮唐草文]·쌍봉무늬[雙鳳文]·쌍룡무늬·보상화무늬[寶相華文] 등 고려시대의 도안이 조략(粗略)해지고 아울러 표현이 대형화된다. 후기인 17~18세기에는 점차 매죽(梅竹)·화조(花鳥) 등 해체된 그림 의장이 우세해졌으며, 이 시대의 청화백자무늬와 함께 순정적인 표현이 많아진다. 말기인 19세기에는 나전기법에 ‘끊음질’이 성행하였고, 따라서 문양보다 자연묘사에 중점을 두어 십장생(十長生)과 산수(山水)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나타난다.

  한편, 매죽·화조무늬를 익살과 동심적(童心的)으로 표현하는 기풍이 늘어나서, 색다른 치기(稚氣)의 아름다움으로 조선시대의 나전이 지니는 하나의 매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후 일제강점기하에서 나전공예는 근근히 그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8·15광복과 더불어 다시 개화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경제성장기에 접어든 1960년대부터는 전례없는 나전공예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였으며, 기법도 현대감각에 맞게 더욱 정교하고 다양해졌다.

  다음으로 칠기는 옻나무의 수액(樹液)을 써서 가공 ·도장된 제품을 말한다. 칠은 동양의 특산으로, 칠공예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타이 ·미얀마 등에서 발달하였다. 칠액은 수피(樹皮)와 재부(材部) 사이에서 스며나오는 적갈색의 점조액(粘稠液)으로 단순한 증발에 의해서 건조되는 것이 아니며, 온도 25∼30 ℃, 습도 75∼85 %라는 적온적습에 의해 고무질 중의 래커가 작용하여 굳어진다. 또 60 ℃ 이상으로 가열하면 경화하는 성질을 잃고 100 ℃ 이상으로 더욱 가열하면 몇 시간 만에 경화하고, 온도가 높아지면 경화시간이 단축되는 성질이 있다.

  일단 굳은 칠은 산이나 알칼리 등의 약품에 침해되지 않고, 열이나 전기 등의 절연성, 접착력 ·방부성 ·방습성도 강하다. 칠은 옛날부터 이용되었으며, 식기 ·가구 ·집기류 ·건축 ·불상 ·불구 ·제기(祭器)나 미술공예품에 사용되고, 또 선박 ·차량 ·항공기 등에도 응용되었다.

  칠기제작에 있어서 옻나무에서 채취한 그대로의 칠액을 생칠(生漆)이라 하며, 이것을 칠하면 건조가 너무 빨라 광택도 나쁘기 때문에, 질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서 잘 뒤섞어 유화(柔化)하는 작업과 수분을 제거하는 두 공정을 거쳐 정제칠을 만든다. 다시 기름이나 안료를 섞어 상도칠(上塗漆:화장칠) ·하도칠(下塗漆:초벌칠) ·각종 채칠(彩漆) 등을 만든다. 칠공예는 그 제작에 있어서 생지(生地) ·도칠(塗漆) ·가식(加飾) 등의 공정으로 나뉜다. 생지에는 목재 ·대[竹] ·종이 ·가죽 ·마포(麻布) ·금속 ·도자(陶瓷) ·누인 명주 ·합성수지 ·화각(華角) 등 각종의 제재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목재가 가장 많이 쓰이며, 규목 ·단풍나무 ·오동나무 등을 톱 ·끌 ·녹로대패 등으로 다듬는다. 대나무는 표피를 벗기고 적당한 폭으로 쪼개 엮은 것을 쓰며, 이를 죽장(竹張) 또는 남태(藍胎)라고 하며, 타이 ·미얀마의 킨마가 이것이다. 종이는 목형(木型)에 여러 장을 겹쳐 발라서 만드는 것과 나무 위에 종이를 발라 옻칠을 하는 것이 있다.

  마포를 칠로 겹쳐 바르는 방법을 마포건칠(麻布乾漆)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협저(夾紵)라 하고 일본에서는 색(紵)이라 한다.

  도자(陶瓷)에 옻칠하는 것을 도칠(陶漆)이라 한다. 도칠하는 공정은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바닥칠 ·중간칠 ·화장칠의 순으로 한다. 바닥칠(下地)은 칠기의 정형(整形), 견뢰도(堅牢度)의 증가, 마무리 등에 따라서 각종 방법이 있고 바닥칠을 최상으로 하며, 그 외에도 아교바닥칠 ·섭하지(涉下地:거친 바닥칠) ·풀칠 바닥칠 등이 있다.

  특수한 바닥칠로서 아스팔트에 테레빈을 혼합하는 아스팔트 바닥칠, 그 외에 송진 ·석고 ·카세인(乾酪素) 등도 쓰인다. 중간칠은 바닥칠의 효과를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서 바닥칠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다. 또 바닥칠이 끝나고, 중간칠을 하기 전에 숫돌로, 중간칠이 끝난 다음에는 목탄으로 다듬어 화장칠을 한다.

  화장칠은 유분(油分)을 포함하고 있는 상도칠을 칠하므로 그대로 광택을 발한다. 또한 납색도(蠟色塗)는 유분이 없는 상도칠을 칠하여 말려서 목탄으로 연마하고, 거기에 종유(種油)와 각분(角粉)을 묻혀 문지른다. 이 외에 목재 재질의 목리(木理)를 살리는 투명도(透明塗)가 있다.

  한국 목칠공예에 있어서는 도장(塗裝) 또는 칠공품(漆工品)이나 화각장(華角張)을 제외하고는 목재의 재질이 가지는 자연미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을 중시하였으므로 모든 목칠공예가 다 옻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간혹 오동나무나 소나무에 인두질(烙印法)을 하는 예가 있으나 역시 목리(木理) 맛이 잘 나도록 볏짚수세미로 닦아낸 후 기름행주질을 하였으며, 따라서 칠 없이 잣기름 ·호두기름 ·오동기름 ·참기름 ·콩댐 등으로 길들인 것을 순리(順理)로 하였다. 소반이나 일부 가구는 생칠을 하기도 하나 자개장 ·자개그릇 이외에는 주칠(朱漆) ·흑칠(黑漆) 등 불투명 도료를 쓰는 것은 일반적이 아니다.

  문양과 회화적(繪畵的) 도문(圖紋)에는 낙인법(烙印法), 칠이 마르기 전에 불건성칠(不乾性漆)로 그리는 흡착법(吸着法) 등이 있고, 금속의 가루를 뿌리는 것, 식물의 종자 ·열매 ·잎을 이용하는 법, 난각(卵殼) ·패각(貝殼) ·주석의 얇은 판 등을 이용하는 법 등이 있다. 가식(加飾)은 회화적 방법, 조각적 방법, 감장첨부법(嵌裝貼付法)의 세 가지가 있다.

  회화적 방법에는 칠로 문양을 그리고, 금속분이나 색분을 뿌리는 것, 색칠(色漆)로 문양을 그리는 칠화(漆畵)가 있고, 금은박(金銀箔)을 아교로 개어 그리는 금은니화(金銀泥畵)가 있다. 조각적 방법에는 칠을 거듭 칠한 면에 문양을 새기는 조칠도(彫漆塗), 칠면에 문양을 선각(線刻)하여 금(金)을 박는 침금(沈金), 목조(木彫) 위에 주칠을 하는 것이 있다. 감장첨부법에는 조개껍데기를 문양으로 잘라 칠면에 박아넣는 나전, 금속 ·옥(玉) ·상아 ·뿔을 감입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한국의 목칠공예 가운데 가장 이채롭게 발달한 것은 나전칠기(螺鈿漆器)이다. 고대 한국의 칠공예품으로서 가장 뚜렷한 예는 경주 호우총(壺棹塚)에서 출토된 목심칠가면(木心漆假面), 또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출토된 목심과 협저로 된 채화칠이배(彩畵漆耳杯) 등 일련의 칠공예품은 모두 삼국시대 칠공예의 양상을 전해주는 유물들이다. 이들 삼국시대 칠공예품이 보여준 기법은 그 기명제식(器皿制式)과 더불어 중국 한(漢) ·육조시대(六朝時代) 양식의 짙은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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